Project : Quay Brothers :Welcome to the Dormitorium
Genre : Exhibition
Address : 2046, Nambusunhwan-ro, Seocho-gu, Seoul
Area : 335㎡
Client : Artblending
Involvement : Fundamental Plan, Space design, Construcion
Date : 2020.06
“작가의 시선과 관점이 확장된 전시 공간을 만들다”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 퀘이 형제
인형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한 장면씩 촬영해 움직임을 만드는 ‘퍼핏 애니메이션(puppet animation)’을 아시나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 영화감독인 퀘이 형제는 1980년대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이자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194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퀘이 형제는 필라델피아 예술대학교와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거쳐 1979년 영국에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약 40년간 세계적인 애니메이터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겨왔습니다. 그 중 1986년 칸영화제 단편 경쟁작 <악어의 거리(Street of Crocodiles)>로 명성을 얻었고, 줄리 테이머의 영화 <프리다(2002)>에 삽입된 ‘죽음의 날(Day of the Dead)’ 클립으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죠. 이들의 작품들은 테리 길리엄,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등 영화계 거장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들은 퍼핏 애니메이션이라는 고전적이면서도 근 현대적인 매체를 통해 충격적이고 생동감 있는 초현실적 경험을 선사해 왔습니다. <퀘이 형제 :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은 괴기스러우면서도 동화적인 공간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체험을 설계해 관객에게 호기심과 다양한 영감을 전해주었습니다.
작품 ? 공간을 만나다
[step 1. 그들의 작품 세계]
우리는 공간에 퀘이 형제의 작품을 담기 전, 그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도미토리움 등 그들의 작품을 반복해서 관찰하며 분석했습니다.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퍼핏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시점과 관점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호기심과 두려움, 공포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관람객이 퍼핏을 보는, 또는 퍼핏이 바라보는 관점의 표현 방식들이 긴장을 자아내며, 아주 다양한 장면들을 연출합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관점의 방식을 공간 속에 다양하게 담아내는 것은 어떨까?’ 구멍, 틈, 문, 창, 커튼, 거울, 유리, 현미경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관람자의 UX를 다양하게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step 2. 작품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먼저 공간을 설계할 때, 작품의 특징인 괴기스러움과 독특함이 드러나면서, 작품과 공간의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그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무채색 계열로 이뤄졌으며, 거칠고, 날카롭고, 차가웠습니다. 혹은, 강렬한 컬러로 시각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힌트를 얻어 그것을 담아낼 공간의 톤앤무드도 비슷하게 조성했습니다.
특히 퀘이 형제의 대표작이자, 제39회 칸 영화제 초청작으로 유명한 ‘악어의 거리’를 참고하여 작품의 소재와 형태, 구성, 연출 방식 등 전반적인 톤앤무드의 베이스를 공간에 적용했습니다. 또, 작품을 관람하는 ‘관점의 방식’들을 접목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작품과 조화를 이룬 공간 자체를 즐기고, 그 속에서 작품을 체험하고 감흥에 젖을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step 3. 어떠한 스토리로 공간을 구성할 것인가]
우리는 관람객이 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전시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고, 작품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동선에 따라 이동하며 선 채로 관람하는 일반 전시와 달리, 본 전시는 관람객의 다양한 행동을 유도합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퀘이 형제의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고, 기대감과 긴장감을 던져주는 스토리로 공간의 컨셉을 정했습니다.
퀘이 형제의 초청으로 이들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는 관람객. 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퀘이 형제가 나타나지 않자, 관람객들은 이 저택에 대해 호기심이 생깁니다. 관람객 스스로 퀘이 형제의 저택 곳곳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탐색합니다.
공간을 이야기하다
전시장의 ‘파사드’는 차가운 회벽의 느낌으로 마감했습니다. 저택 앞에 당도한 관람객들은 붉은 색 창문 커튼 사이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또, 기다렸다는 듯 외벽의 등도 환하게 밝혀져 있는 상태죠. 관람객은 빛을 따라 전시장 입구로 들어섭니다.
퀘이 형제의 작품 ‘악어의 거리’ 중에는 퍼핏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실타래에 묶여 갇혀 있다가 도망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누군가가 퍼핏의 팔에 감겨 있던 실을 가위로 잘라내어 퍼핏이 의식을 찾게 되는 것인데요, 우리는 이 인상적인 장면을 파사드에 적용했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탈출에 성공한 퍼핏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퀘이 형제의 작품 한 장면을 파사드에 연출하며 입장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작품 무드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 전시된 ‘작은 홀’은 작품의 배경과 동일한 형태와 마감으로 내부를 연출했습니다. 관람객은 마치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퀘이 형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괴기스러움과 함께, 허름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로 조성한 공간에서 증폭된 긴장감을 느낍니다.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길고 좁다란 복도 끝에 ‘로비’가 보입니다. 관람객은 어두운 공간을 점점이 비추는 빛을 따라 조용히 이동합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각과 여러 작품들, 오묘한 향기를 의식하면서 로비를 둘러봅니다. 적막하고 다소 두려운 분위기의 공간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퀘이 형제가 어서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관객의 체험 요소로서 새로운 ‘관점의 방식’을 적용해, 반대쪽에서만 보이는 특수 거울을 사용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관람객은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고, 주인 없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집니다. 주위를 둘러보다 다음 방의 커튼을 살짝 걷어봅니다. 형제의 작업실로 짐작되는 곳. 화려하게 반짝이는 조명이 설치된 테이블 위로 시선이 갑니다. 퀘이 형제가 작업했던 작품들의 소재로 테이블을 채우고, 이들이 실제로 좋아했다는 줄 조명으로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이곳에 적용한 관점의 방식은 창을 이용한 장치입니다. 테이블 좌측에 있는 창은 입구에서 입장하는 관람객의 그림자가 비치는 공간입니다. 누군가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공간을 이동하며 살펴볼수록 관람객들의 호기심은 짙어집니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니 긴 복도가 등장합니다. 이곳에는 형제의 드로잉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빛을 따라 복도 끝까지 걸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먼지가 수북이 쌓인 거울이 벽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곳에도 색다른 관점의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울을 비치했습니다.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엿보고 있다는 다소 섬뜩한 암시를 줍니다.
거울을 통해서도 작품이 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작품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영상 속에 움직이는 퍼핏과 각 장면에 등장했던 도미토리움을 흥미롭게 관찰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 채...
전시장 내부는 어둡게 조도를 낮추고, 희미하게 빛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습니다. 이동 경로에는 반사 재질의 거울과 액자를 설치하고 벽에는 천을 드리우는 등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낡고 구멍 난 커튼 사이로 빛을 따라 움직이며 영상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일반 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관점의 체험입니다.
또, 도미토리움, 현미경 등 작품이 다양해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연출했습니다. 작품의 위치와 형태에 따라 들여다보고, 올려다보고, 걷어서 보고, 돌아서도 봅니다. 이러한 방식은 색다른 사용자 경험을 전달합니다. 앞서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행동을 뒤에서 지켜보면 천진난만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관람객들이 도달한 곳은 관이 있는 방입니다.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가 감돕니다. 로비에서 거울을 보며 얼굴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낯선 이의 모습이 창을 통해 그대로 보입니다. 자신이 거울이라 믿고 그 앞에서 했던 행동을 되돌아보면서, 누군가가 이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죠.
관람객은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며 벽에 세워진 큰 거울에 시선을 옮깁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려다 거울에 반사된 형제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한 번 더 놀랍니다. 그러면서 퀘이 형제의 저택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도미토리움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작품 속을 돌아다니며 작품 본연의 예술성을 감상하고, 체험하고, 작가의 시선을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습니다.
벽면에 설치한 프레임 속 작품, 좌대에 비치한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처럼 가만히 바라만 보는 전시는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합니다. 물론 작품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해석을 방해하는 과도한 장치도 전시에는 불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무엇보다 관람객과 작품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확장하고 개방해 관람객 스스로 영감을 찾고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퀘이 형제의 작품이 가진 힘이 공간에 녹아들고 그 아우라가 훼손되기보다는 공간의 디자인을 통해 더 깊어지기를 바랐습니다.
퀘이 형제의 저택에 초대된 모든 방문객이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기괴한 감동을 얻어가셨기를 바랍니다. 또, 퀘이 형제의 도미토리움과 그들의 이름을 더욱 친숙하게 기억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들의 작품 세계를 공간 속에 조화롭게 펼쳐 놓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전시였습니다.